앞에서 '슬픔은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소개했는데, 이번에는 슬픔의 5단계에 대해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건강, 직업, 관계, 꿈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잃으면 우리는 깊은 슬픔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슬픔을 겪다 보면 “왜 나는 아직도 이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실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퀴블러-로스가 제시한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5단계(Kübler-Ross,1969)를 소개합니다. 이 단계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순서대로 거치는 공식은 아니지만, 슬픔을 이해하기 위한 지도로 활용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1. 부정: “이 일이 정말 일어난 것일까?”
처음에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어.”
“아직 믿을 수 없어.”
현실을 회피하는 첫 번째 방어기전입니다. 갑작스러운 상실일수록 현실감이 떨어지고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도 오래전 형님 가족의 사건에 대한 연락을 받고, 경찰서로 달려갈 때만 해도 "설마"라며, 강한 부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원 영안실에 놓여 있는 형님 가족의 4명의 이름을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2. 분노: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현실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면 분노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을까?”
“조금만 달랐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때로는 가족이나 의료진, 자신 또는 하나님을 향해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때 느끼는 분노는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일 수 있습니다.
저의 형님 사건에서도 분명 뒤에서 목격한 택시기사가 '가해자가 있었다'고 신고를 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담당 형사과장은 모든 것을 운전자의 운전 미숙으로 결정하고 사건을 조기에 마무리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분노는 더 크게 표출되었습니다.
3. 타협: “만약 이렇게 된다면…”
타협 단계에서는 과거를 되돌리거나 현실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강해집니다.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한 번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때 사람은 ‘만약’이라는 생각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에는 죄책감과 후회가 타협의 생각과 함께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형님 가족의 사건이 발생하기 1주일 전 꿈을 꾸었습니다. 형님 가족이 돌아가셔서 조화가 둘러 있는 영안실에서 제가 상주로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꿈이었습니다. 꿈을 깨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1주일 후 이 꿈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형님께 운전 조심하라고 전화하지 못한 것이 너무 강한 죄책감과 아쉬움으로 다가왔었습니다.
4. 우울: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상실의 현실이 분명해지면서 깊은 허전함과 슬픔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기 싫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며, 이전에 즐거웠던 일에도 관심이 생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잠이나 식사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슬픔은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습니다. 다만 슬픔이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거나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방해한다면 전문가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장례식을 마친 후 오랫동안 형님 가족들에 대한 꿈을 꾸며, 얼마나 마음이 힘들고 우울했는지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유난히 부모님과 일찍 사별의 아픔을 간직한 채 나이 차이가 많은 형님과 형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충격은 더 컸습니다. 그래서 이런 아픔을 떨쳐버리고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이스라엘로 도망갔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별의 고통은 거기까지 쫓아다니며 괴롭혔습니다.
5. 수용: “이제 이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야겠다.”
수용은 상실의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돌아오지는 않지만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 사람은 내 삶에서 중요한 존재였다.”
중요한 것은 어떤 날에는 괜찮다가도 특정한 장소나 음악, 기념일을 통해 다시 슬픔이 밀려올 수 있습니다. 감정은 한자리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우리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어제는 조금 살 만하다가도 오늘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고, 때로는 가슴이 뻥 뚫린 듯한 공허함과 무감각이 번갈아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러한 감정의 변덕은 거대한 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상실이라는 낯선 현실에 조금씩 적응해 가기 위한 자연스러운 마음의 고투(苦鬪)입니다.
📝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퀴블러 로스가 정리한 '애도의 5단계'를 '슬픔의 5단계'로 적용해 보았습니다. 이 "5단계는 순서표가 아니라 슬픔을 이해하는 하나의 지도”입니다. 다만 제 경험으로는 사람마다 상실의 의미와 관계의 깊이, 성격, 사회적 지지, 상실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애도의 단계나 모습도 다를 수밖에 없다고 느껴집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어떤 슬픔을 경험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다음은 '슬픔을 성경은 어떻게 하는가?'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참고문헌
윤상철(2007). 가족상실과 위기상담. 한국장로교출판사.
Kübler-Ross, E. (1969). On death and dying. Macmil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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